최병일 경제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
입력 2022-09-30 09:39teen.mk.co.kr
2025년 04월 19일 토요일
한국 카페에서는 노트북 컴퓨터를 두고 화장실을 가도 안전하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공공장소에서 가방이나 외투를 두고 다른 곳에 잠시 다녀와도 괜찮다. 이처럼 한국인들의 높은 윤리의식과 사회안전망은 해외 유튜버들에게도 칭찬을 받고 있다. 그런데 한국인들의 도덕성과 양심의 기준이 이처럼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은 급격한 경제 성장으로 고등교육이 보편화되고, 물질적 여유가 생기면서 시민의식이 성장한 것은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윤리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도처에 설치된 CCTV 역시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CCTV들로 인해 부정한 행동을 한 사람들은 대부분 적발되기 때문에 나쁜 행동을 쉽게 못 하는 것이다. 한국은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개인 행동과 생각들을 남이 쉽게 관찰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게 되었다. 정보통신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생산자들과 소비자들은 상품을 비롯한 시장에 관한 정보를 쉽게 공유할 수 있어 과거보다 정보 비대칭에 따른 비효율적인 결과가 발생하는 상황이 크게 감소했다. 또 금융산업의 발달로 과거에는 정부나 할 수 있었던 발전소, 철도 건설 등과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들도 민간에서 수행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로 인해 경제에서 정부의 역할을 줄여도 될 것 같은데 과거보다 정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이상적인 국가는 '야경국가'라고 주장했다. 그 역시 최선의 정부는 국민들을 도둑이나 외국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해주며 최대한 자유를 보장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오늘날 정부는 그들의 생각과는 반대로 정부의 역할을 키워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평균 40%를 넘고 있다.
1929년 미국의 경제 대공항 이후 경제학자들은 선배 경제학자들과 다른 생각을 했다. 그들은 경기 변동의 주요 원인이 공급보다 수요 측면에 있다고 생각했다. 케인스는 민간의 소비와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저축의 역설(또는 절약의 역설)'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는데 오늘날 주요국들의 저성장과 장기 불황이 지속되고 있는 원인이 케인스가 말한 저축의 역설 내용과 상당히 일치한다. 그래서 불황의 원인을 케인스에서 찾은 각국 정부는 처방 역시 케인스가 제시한 정부 역할을 통한 수요 증대로 경기 부양을 꾀하고 있다.
저축의 역설이란 개인적으로는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는 '저축'이 국가 차원에서는 오히려 잘못된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이나 기업 입장에서 불확실한 경기와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손실에 대비해 저축하는 행위는 위험을 회피하는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들의 선택이 모이면 거시적인 수준에서는 국가 전체의 수요가 감소하게 된다. 총수요가 줄면 기업이 생산한 결과물인 상품은 판매되지 않고 재고로 남아 기업의 생산활동을 위축시킨다. 기업이 생산활동을 줄이면 이는 고용 감소와 가계소득 감소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저축의 증가, 민간 수요의 감소로 경기가 침체하는 악순환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일차원적으로 생각하면 소비를 줄였던 개인과 기업들이 투자와 소비를 전과 같이 증가시키면 된다. 그런데 경기가 침체되고 있는 상황에서 개인이나 기업들은 전략적으로 행동하므로 수요를 증가시키지 않는다. 경제 주체들이 동시에 소비와 투자를 늘리면 경기가 회복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클 때 기업과 개인은 서로 눈치만 보고 좀처럼 주머니를 열지 않는다.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을 제외한 많은 사람들이 먼저 지출을 증가시켜 경기가 확실하게 상승할 것이라는 확신이 설 때 뒤따라 소비와 지출을 늘리는 전략적인 행동을 한다. 만일 개인이나 기업들 가운데 일부가 경기를 회복시키려고 주택을 매입하거나 공장을 건설했는데 나머지 사람들이 여전히 보수적으로 행동해 경기가 더 침체된다면 선제적으로 주택을 구매하거나 설비 투자를 한 개인들은 부동산 가격 하락과 상품 재고 증가로 손해를 보게 된다.
이처럼 불확실한 미래로 개인들이 서로 눈치만 보고 있을 때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남들보다 먼저 지출을 증가시키는 행위는 경제 전반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외부 효과를 발생시킨다. 또 상승세의 경제 지표는 경제 주체들을 안심시켜 지출과 소비를 증가시키고 이는 다시 경기 확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낳는 공공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경제 주체들이 지출을 주저해 국가 경제 전체가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정부가 수요를 창출해 경기를 견인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경제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지속된 저금리 정책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맞물려 물가가 크게 상승했다. 물가를 잡기 위해 각국 통화당국이 긴축 정책을 시행하자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 가격이 하락하고 경기가 위축되고 있다. 문제는 지금과 같은 고물가 시기에 경기 위축은 앞서 언급한 케인스식 처방인 확장적 재정 정책을 시행할 수 없다. 통화당국이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고금리 정책을 시행하는데 다른 경제 부처가 물가 안정에 독이 될 수 있는 확장적 정책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제 경제학자들과 정부는 '물가와 경기 침체는 동시에 잡을 수 없다'는 어려운 숙제에 도전해야 할 때가 되었다.
■ 알쏭달쏭 OX 퀴즈
1. 오늘날 정보통신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정부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감소했다. ( )
2. 케인스는 경기 부양을 위해서는 통화량 확대가 가장 중요한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 )
3. 경기 하락 때 개인의 합리적 의사결정과 국가 단위 최적의 의사결정 방향은 다르다. ( )
▶ 정답 1. × 2. ×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