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택 경제경영연구소 선임연구원
입력 2021-06-11 20:01teen.mk.co.kr
2024년 12월 22일 일요일
신고전학파 성장 모형은 경제 성장에 대해 많은 설명을 해주었지만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게 했다. 로버트 솔로는 후진국이더라도 저축으로 자본이 축적되면 가파르게 경제가 성장한다고 설명했고 유럽과 미국, 동아시아를 살펴보면 이론에 부합하는 경제 성장 경험이 관찰된다. 그러나 지구본을 돌려 아프리카를 살펴보면 긴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경제 성장을 이루지 못한 국가들이 더 많음을 관찰할 수 있다. 경제 성장이 시작되는 보다 근본적인 근원은 무엇일까? 경제사학자인 더글러스 노스가 이런 의문을 풀기위해 주력했다.
Q. 경제사는 어떤 학문인가요.
A. 노스는 1920년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태어나 평범한 대학 생활을 보냈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후 하마터면 사진작가가 될 뻔했던 그는 주변 조언에 따라 경제학자의 길을 선택했다. 노스에게 최대의 관심사는 '무엇이 부유한 혹은 가난한 경제를 만드는가?' 하는 것이었다. 노스는 경제사 연구에 새로운 방법을 시도한 선구자 중 한 명이었다. 노스는 역사적 사실을 중심으로 서술되던 경제사 분야에 경제이론과 계량적 분석 기법 도입을 시도했다. 단순히 역사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흐름이 어떤 경제이론에 의해 설명될 수 있는지를 찾는 것이다. 또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과거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통계적 증거 자료를 제시하는 연구 방법을 도입했다.
Q. 제도는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A. 노스는 경제 발전이 왜 서구사회에서만, 그리고 더 과거가 아닌 18세기 이후에 나타났는지에 집중했고 그 핵심 요인을 '제도'라고 지적했다. 제도란 사회 구성원이 공유하는 '게임의 규칙'으로서 공식적인 법률뿐만 아니라 비공식적인 규범과 도덕도 포함한다. 제도는 구성원의 경제적 유인(incentive)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가령 개인의 재산을 잘 보장해주는 국가일수록 경제 발전이 촉발된다. 왜냐하면 자신이 열심히 노력해 축적한 재산을 국가나 폭도들에게 빼앗길 것이 예상된다면 애초에 재산을 모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개인의 재산권이 인정된다면 상거래나 재화 생산을 통해 부를 모을 동기가 생긴다. 즉, 사유재산제도가 (너무나 당연해서 경제이론가들이 간과해왔던) 경제 발전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Q. 사유재산권 보장을 통한 경제 발전 사례를 든다면.
A. 노스는 중세 유럽에서 역사적 증거를 제시했다. 유럽 대륙에서는 수많은 영주들이 소규모 영역을 분할해 통치하면서 지배자들의 전횡이 들끓던 시대였다. 반면 영국과 네덜란드는 시민권 보호를 강화하는 각종 사건이 발생했다. 17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을 살펴보자. 기존에 왕은 전쟁 등 재원이 필요할 때 세금을 마음대로 부과해 개인의 재산을 수탈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재판관 임명 권한까지 보유해 개인 간 분쟁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영국 국왕인 제임스 2세가 명예혁명을 통해 쫓겨나고 새 국왕인 윌리엄 3세가 권리장전(Bill of Right)을 받아들이면서 의회가 재정에 대한 권한을 보유하게 되었고 이는 재산권 보호를 강화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제도적 변화가 훗날 유럽에서 영국이 가장 먼저 경제 발전을 시작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노스는 주장했다. 노스는 당시 영국의 국채시장을 조사했다. 그 결과 명예혁명 이후 국채 발행량이 증가하는 한편 이자가 현저하게 감소했음을 확인했다. 이는 금융시장에 자본을 공급하던 투자자들이 영국 정부에 돈을 빌려주었을 때 떼일 위험이 줄어들었다고 판단했음을 의미한다. 이런 변화는 영국의 증권 및 금융이 발달하게 된 중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Q. 많은 국가들이 왜 좋은 제도를 선택하지 않고 빈곤에 머물렀나요.
A. 그렇다면 왜 지도자들은 효율적인 제도가 국가를 번영시킨다는 것을 관찰했음에도 불구하고 비효율적인 제도를 유지하고 있을까. 이러한 모습은 과거 봉건영주뿐만 아니라 현대의 저개발 국가에서도 광범위하게 관찰되고 있다. 그 이유는 지도자들의 목표가 국민의 경제적 번영보다는 자신이 실각할 가능성을 줄이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경제가 발전해 지도자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경쟁자의 출현을 막기 위해 재산 몰수와 법적 제재라는 전근대적 제도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노스는 또한 제도는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e)이 있어 한 번 형성된 이후에는 쉽게 변화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좋은 제도하에서 정부는 교육과 기술 개발에 투자해 경제 성장을 가속화하고 그럼으로써 제도 또한 더 효율적인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다. 그러나 나쁜 제도하에서는 제도 개선이 없는 악순환이 계속되는데, 긴 시간 동안 빈곤 상태인 국가들은 이 상태에 머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노스는 빈곤 탈출은 정치·사회적 개혁이 필요하며, 이는 어렵지만 불가능하지 않음을 지적했다. 노스는 경제 발전에 대해 후대 학자들에게 새로운 연구 방향을 제시했으며 경제사와 연구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상을 받았다.
■ 알쏭달쏭 OX 퀴즈
1. 제도는 경제 발전이 촉발되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요인이다. ( )
2. 재산권 보호가 강할수록 개인의 경제활동과 자본 축적 동기가 위축된다. ( )
3. 한 번 형성된 제도를 변화시키기는 쉽지 않다. ( )
▶ 정답 = 1. ○ 2. X 3. ○
[임성택 경제경영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