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택 경제경영연구소 선임연구원
입력 2022-06-24 08:01teen.mk.co.kr
2024년 12월 22일 일요일
올해부터 적용 중인 '중대재해처벌법'을 놓고 세간이 시끄럽다. 산업 현장에서 사망 같은 중대한 재해가 발생할 때 경영자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이 법은 너무 가혹하다는 비판도 받지만 근로자들의 안전을 확보하는 데 꼭 필요하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그렇다면 근로자 안전과 처우 개선에 대한 노력은 언제 시작됐을까. 이는 공장이 처음 등장한 산업혁명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700년대 후반 영국은 상품 제조가 전통적인 수공업 방식에서 기계를 이용한 생산으로 옮겨가던 때였다. 원래 영국 주력 상품은 양털을 가공해 만드는 모직물이었다. 모직물은 소규모 수공업 공방에서 생산됐는데 비교적 오랜 역사를 가진 모직물 산업은 장인이 조수이자 제자인 도제(徒弟)를 받아들여 생산하는 도제 제도(apprenticeship)가 일반적이었다. 여기에는 고용과 근로자 보호를 위한 몇 가지 규칙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18세기 후반이 되면서 영국에서 면직물 산업이 크게 성장하게 된다. 목화 솜에서 채취한 섬유로 만들어진 면은 질기고 부드럽다는 특성 때문에 큰 인기를 얻었다. 또한 미국에서 값싸게 목화를 조달해 면직물 제조에 기계를 사용하게 되면서 생산 비용이 저렴해진 것도 장점이었다.
면은 목화 솜에서 실을 뽑아내는 방적(weaving)과 실을 가로세로로 교차시켜 천을 만드는 방직(spinning) 공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가장 기초적인 방적기는 석기시대부터 사용돼온 물레였는데 사람이 손으로 작동시키며 한 번에 한 가닥의 실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생산성이 낮았다. 비용 측면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사업가들은 더 높은 생산성을 달성할 방법을 모색했다. 한 번에 실 8개를 만들어내는 '제니 방적기'가 등장했고, 여기에 계곡물에 수차를 설치해 회전력(동력)을 얻는 '아크라이트 방적기'가 발명되면서 본격적으로 기계를 통한 생산 시대가 열렸다.
면직물은 마치 현대의 반도체처럼 18세기 최첨단 상품이었다. 면직물을 주력으로 수출하던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진보한 산업을 갖추며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공장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이 있었다. 제조업 역사가 짧아 공장 근로자를 보호할 규칙이나 법규가 없다 보니 이윤 동기로만 작동될 뿐 지금처럼 근로자 인권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당시 공장 노동에서 가장 취약했던 근로자는 어린이와 청소년, 여성이었다. 방직기가 수력이나 증기기관에 의해 작동하게 되면서 근로자가 직접 힘을 쓰는 일이 줄어들었고, 이는 성인 남성 대신 어린이나 청소년을 고용해 물건을 생산할 수 있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방직기 밑에 들어가 기계 작동 중 끊어진 실을 잇는 위험한 작업은 체구가 작은 아이들에게 적합한 일이었다. 당시 인구 급증으로 다수의 자녀를 가진 부모들은 자녀를 공장에 취직시켜 돈을 벌어오게 함으로써 생계를 해결하기도 했다. 당시 공장 근로자 가운데 3분의 2가 어린이와 여성이었다.
공장에서 일하는 아이는 교육받을 기회를 상실하고 하루에 12시간 이상 일을 해야 했다. 건강 상태도 양호하지 못해 '백인 노예'라고 불릴 정도였다. 열악한 근무 조건에 대해 계몽적 사고를 가진 영국 공장주들은 '공장법(Factory Acts)' 도입을 주장했다. 치열한 격론 속에서 공장법은 1847년까지 18세 이하 아동과 여성의 노동시간을 10시간 이내로 단축하도록 개정됐다. 이는 근로 환경 개선을 위한 최초의 법률적 규제로 의미가 컸다. 영국보다 산업화 대열에 늦게 합류한 프랑스와 독일도 최대 근로시간을 설정하며 영국 공장법에 영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