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일 강원대학교 교수
입력 2024-12-19 17:36teen.mk.co.kr
2025년 02월 13일 목요일
어떤 심리학자가 빈 방에서 먹이를 주며 비둘기들의 행동을 관찰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모이통 앞에서 비둘기들은 저마다 다른 행동을 했다. 어떤 비둘기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빙빙 돌았고, 다른 비둘기는 머리를 위아래로 흔들었고, 또 다른 비둘기는 먹이 통의 모서리를 부리로 쪼았다. 비둘기들은 이러한 행동이 먹이를 얻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믿었지만, 실제로 먹이는 그들의 행동과 무관하게 무작위로 제공됐다. 이는 행동주의 심리학자 버러스 프레더릭 스키너(Burrhus Frederic Skinner)가 설계한 '비둘기 미신(Pigeon's Superstition)' 실험에서 밝혀진 현상이다.
스키너는 우발적 강화(accidental reinforcement) 개념을 통해 동물이 특정 행동과 보상을 잘못 연결 짓는 경향을 입증했다. 실험에서 비둘기들은 무작위적으로 제공된 먹이를 특정 행동의 결과로 착각하며 반복했다. 어떤 비둘기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 또 다른 비둘기는 특정 방향으로 빙글빙글 돌았다. 이 실험은 생명체가 주변 사건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본능이 때로는 잘못된 인과관계를 만들어 비합리적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인과관계에 대한 착각은 '새'를 하등한 동물로 치부하는 인간에게서도 흔히 나타난다. 고대 인류는 천재지변이나 전염병 창궐처럼 불확실성과 무작위성이 큰 환경 속에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천문학을 발전시켰다. 별과 행성의 움직임을 관찰해 계절의 변화를 예측한 후 달력을 만들고 농업과 사회 구조를 발전시켰다. 논리적 근거를 둔 천문학은 명확한 인과관계를 바탕으로 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성과였다. 그러나 별자리와 운명을 연결하려는 점성술의 시도는 달랐다. 이는 천문학의 부산물로 나타난 비합리적 믿음으로 당시에는 인간 삶의 설명 방식 중 하나였지만 현대적 관점에서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미신의 기원이라고 평가된다.
과거의 허황된 믿음은 놀랍게도 현대 사회에서도 강하게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별자리 운세를 통해 자신의 성격을 분석하거나 미래를 점친다. 과학적 근거가 부족함에도, 점성술은 심리적 위안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밤하늘의 별을 보며 소원을 비는 전통 역시 희망과 안정을 주는 상징적 의례로 자리 잡았다. 이는 인간이 무작위적 사건에서도 의미를 부여하려는 경향을 여전히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금융시장에서도 유사한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투자 가치나 경제 펀더멘털보다 군중 심리와 행동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사례는 2021년과 2024년에 일어난 '밈 주식' 현상이다. 게임스톱(GameStop)과 AMC 엔터테인먼트 같은 주식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형성된 실체 없는 기대감 때문에 주가가 급등했다. 이후 주가가 급락하며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봤다. 투자자들은 기업 펀더멘털을 분석하기보다는 군중 심리에 의존, 정서적 반응에 따라 투자 결정을 내렸다.
가상자산 시장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관찰된다. 2024년 11월, 비트코인 가격은 9만달러를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이후 급락하는 등 극단적인 변동성을 보였다. 가격 변동은 처음에는 비트코인 현물 ETF 출시 같은 긍정적 뉴스에서 시작됐지만 본질적 가치보다는 과열된 기대감이 시장을 주도했다.
자산 시장이나 투자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투자자들은 종종 논리적 근거 없이 시장에 접근한다. 이들은 주가 그래프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때론 특정 징크스에 의존하며, 막연한 기대에 기반해 비합리적 결정을 내린다. 특정 날짜에 주가가 상승할 것이라는 헛된 믿음을 가지거나 과거 특정 행동으로 성공했던 경험을 과도하게 일반화하기도 한다. 이는 비둘기 실험에서 나타난 '미신적 행동'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최근 금융시장의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투자자들의 비합리적인 행동은 극단적인 가격 변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군중 심리에 따르는 행동은 단기적으로 심리적 위안을 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손실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투자에서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실질 가치에 기반을 둔 분석과 냉철한 판단이 필요하다. 별자리와 비둘기의 미신을 넘어, 투자에서만큼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인간은 이성과 합리적 사고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둘기와 다르다. 이제 그 능력을 적극적으로 실천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