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일 강원대학교 교수
입력 2024-10-11 09:28teen.mk.co.kr
2025년 01월 20일 월요일
미국 화폐 가운데 가장 고액권인 100달러 지폐의 주인공은 '벤저민 프랭클린'입니다. 그는 다방면에 재주가 많았던 과학자이자 독립운동가였습니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죽음과 세금은 피할 수 없다"는 유명한 명언을 남겼습니다. 그의 격언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며 미국의 조세 당국인 IRS(Internal Revenue Service)의 위엄을 잘 나타냅니다.
세금은 역사의 중요한 갈림길에 자리하고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근대 시민혁명 가운데 변곡점적인 사건들은 세금과 관련이 깊습니다. 프랑스 루이 14세 시절의 재상이었던 장바티스트 콜베르는 "가장 바람직한 증세는 거위의 털을 뽑는 것과 같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국민을 거위에 비유한 것은 지금으로는 부적절할 수 있지만, 정부가 세금을 어떻게 걷어야 하는지를 상징적으로 잘 보여줍니다. 그의 격언이 저주가 되어 18세기 말 프랑스에서는 정부가 무리하게 세금을 걷다가 결국 시민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나라의 동학농민운동 역시 과도한 세금 징수와 탐관오리들의 부패로 인해 백성들의 삶이 너무나도 어려워진 결과로 발생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세금 징수는 왜 필요할까요? '보이지 않는 손'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주장한 애덤 스미스도 공공재의 생산을 위해서는 세금이 필요하다고 동의했습니다. 공공재는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으로 인해 민간은 스스로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만큼 충분히 공급할 수 없습니다.
공공재의 특성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기 전에 여러분 지난 주말 한강에서 불꽃놀이를 보셨나요? 매년 10월 한강의 불꽃놀이는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그런데 이런 불꽃놀이를 사람들이 돈을 내지 않았다고 해서 못 보게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돈을 내지 않은 사람도 이용할 수 있는 상품을 '비배제성'이 있다고 합니다. 또한 내가 불꽃놀이를 본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보는 불꽃이 줄어드는 것도 아닙니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소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을 '비경합성'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일정 부분 불꽃놀이는 비배제성과 비경합성을 갖는 공공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공공재의 사례는 '국방 서비스'입니다. 나라가 국민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군대를 보유하고 국방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누군가 세금을 내지 않았다고 해서 그 사람만 더 위험해지거나 덜 보호받을 수는 없습니다. 외국 군대나 테러 집단으로부터 재산과 생명을 보호받는 일은 모든 국민이 똑같이 누리는 혜택입니다. 쉽게 말해 국방 서비스는 내가 돈을 내지 않아도 이 나라에 살고 있으면 당연히 누릴 수 있는 비배제성과 비경합성을 지닌 공공재입니다.
그렇다면 국방 서비스에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어갈까요? 2023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국방 예산은 약 57조원에 달합니다. 전체 정부 예산이 약 638조원인 것을 감안하면, 국방 예산은 약 9%를 차지합니다. 이런 정보를 접한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국방비 부담이 크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만약 우리나라가 북한과 전쟁을 벌이게 된다면, 우리나라 기업들의 주식 가격은 어떻게 될까요? 경기도와 서울의 집값은 또 어떻게 될까요? 현재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은 대략 2200조원에 달합니다. 만약 전쟁 혹은 전쟁 징후로 주식 시장의 가치가 30% 하락한다고 가정해도 약 700조원의 자산 가치가 물거품처럼 사라집니다. 또 서울과 경기 지역에 약 400만가구의 아파트가 있는데, 전쟁으로 아파트 가격이 1억원씩 하락한다고 가정하면, 무려 4000조원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실제 전쟁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안보가 담보되지 않으면 재산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며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위험을 연간 57조원의 국방 예산으로 억제하고 있다면, 사실상 매우 저렴한 비용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공공재를 생산하는데 '누가 그 비용을 지불할 것인가'라는 결정을 시장에 맡겨두면 마땅한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불꽃놀이를 후원한 대기업처럼 누군가 대신 지불해주면 좋겠지만, 국방 서비스는 너무나 큰 비용이 들기 때문에 민간이 감당하기에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정부가 세금을 걷어 국방, 도로, 치안과 같은 필수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트에서 물건을 살 때는 그 대가로 얻는 이익을 직접 확인할 수 있어 비용을 지불하는 것에 거부감이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 서비스는 내가 낸 세금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집 근처에 큰 도서관이 생겨도 책을 읽지 않는 사람에게는 불필요한 지출로 느껴질 수 있고, 반대로 주차할 자리가 없을 때는 '내가 낸 세금으로 왜 이런 불편을 겪어야 하나'라고 불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처럼 공공재는 개인이 느끼는 혜택을 일대일로 맞추기 어렵기 때문에 의회에서 법으로 항목을 정해 이에 따라 세금을 징수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