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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의 축복' 누리려면…어릴때부터 재테크 공부해야

최병일 강원대학교 교수

입력 2024-09-13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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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갯소리로 '장사꾼이 밑지고 판다, 노처녀가 시집을 안 간다, 노인이 일찍 죽어야겠다'는 말은 대한민국 3대 거짓말이라고 불립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표현은 여전히 가벼운 유머로 소비되지만, 세 번째 말은 고령화 사회에서 점차 현실적인 고민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평균수명과 최빈사망연령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으며, 이는 누구나 체감할 수 있는 사회적 변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통계청 발표 자료에 따르면 1970년대 우리나라 남성의 최빈사망연령은 대략 58세였으나 2020년 이후에는 80세로 크게 증가했습니다. 과거 장례식장에서 가장 흔히 보였던 사망자는 60대였지만, 이제는 80대가 대부분입니다. 고령화와 수명 연장의 결과로 이제는 90세가 넘은 이의 빈소에서나 "혹시 돌아가실 때 많이 편찮으셨느냐"는 덤덤한 인사말을 건넬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장례 문화도 우리의 수명 연장에 맞춰 탄력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금융 의사결정이나 노후 준비는 여전히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 젊은 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10~20년 더 오래 살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노후 준비 방식은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부모 세대는 비교적 짧은 은퇴 후 생활을 보냈던 반면, 젊은 세대는 평균수명이 늘어난 만큼 긴 노후를 준비해야만 합니다.

KB국민은행이 2023년 성인 3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4.6%가 노후 준비가 부족하다고 답했습니다. 특히 경제적 준비가 부족하다는 응답이 53.5%로 건강 관리, 가족 관계 등과 같은 다른 노후 대비 요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습니다. 해당 설문 중 흥미로웠던 부분은 응답자 50.5%가 노후 생활을 성공적으로 살고 있는 '롤모델'이 필요하다고 답한 것입니다. 응답자들은 자신의 부모나 주변 지인들을 노후 준비를 위한 롤모델로 삼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유명인이나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노후 준비가 아닌 자신과 비슷한 생활수준에 있는 주변인들의 노후 준비 모습을 보고 답습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응답자의 상당수는 경제적 준비를 '아직 시작하지 못했다'고 답했습니다. 최빈사망연령을 감안하면 과거 1970·1980년대는 60세 정년 후 10년 정도 살다가 사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이전 세대의 노후 준비는 비교적 간단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퇴직 후에도 수십 년을 더 살아가야 하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경제적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긴 노후 기간에 재정적 어려움에 직면할 가능성이 큽니다.

경제학자 프랑코 모딜리아니는 이러한 문제를 예견한 듯 생애 주기 가설(Life-Cycle Hypothesis)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생애 전반에 걸쳐 소득의 변화를 감안해 소비와 저축을 조율한다고 설명했으며, 이 이론으로 1985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가설에 따르면 사람들은 경제활동을 활발히 하는 청·장년기에는 저축을 하고, 노년기에는 그 저축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경제활동 인구의 사회 진출은 늦어지고, 은퇴는 앞당겨졌지만, 수명은 길어졌습니다. 즉 소득이 높은 경제활동 기간은 짧아지고, 소득이 낮은 노년기는 더 길어진 셈입니다. 모딜리아니의 이론에 따르면 지금의 청·장년 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더 높은 저축률을 유지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축률보다 가계부채가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연금과 국민건강보험 등 사회적 안전망이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해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이 인식하고 있음에도 실제 노후 준비에는 반영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노후 대비가 더욱 복잡하고, 개인적인 차원의 준비가 중요해졌음을 시사합니다.

과거 장수(長壽)는 축복으로 여겨졌습니다. 돌잔치에서 아이가 돌잡이 상에서 장수의 상징인 '실'을 잡으면 모두가 기뻐했고, 장수한 노인은 마을의 자랑이 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장수가 축복만은 아닙니다. 생명보험 업계에서는 질병, 사고와 더불어 '장수 리스크'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했습니다. 사람들은 장수로 인해 더 오랜 시간 동안 경제적·사회적 지원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는 노후 준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앞으로는 더 많은 사람이 이 '장수 리스크'를 직시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부모 세대의 노후 준비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수명과 경제적 상황을 고려한 맞춤형 준비가 필요합니다. 장수는 여전히 축복일 수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그 축복은 달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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