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현 과천외고 영어교사
입력 2025-09-22 09:09teen.mk.co.kr
2025년 11월 12일 수요일
베트남전쟁에서는 미국 측에서 약 5만8000명이 목숨을 잃었고, 베트남에서는 군인과 민간인을 합쳐 수백만 명이 희생당했습니다. 그야말로 양쪽 모두에게 비극적인 전쟁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서로를 '전략적 동반자'라고 부르며 함께 미래를 이야기합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그 화해의 여정을 따라가보겠습니다.
(출처: AP)
1986년 베트남은 큰 결단을 내립니다. 바로 '도이모이' 정책의 시작이었죠. 도이모이는 '새롭게 바꾸다'는 뜻으로, 시장경제 요소를 도입하고 외국과의 교류를 확대하는 정책이었어요. 사회주의 국가가 자본주의 요소를 도입한다는 것은 경제를 살리기 위한 큰 변화였죠.
하지만 미국과의 관계는 여전히 닫혀 있었습니다. 미국은 전쟁 이후에도 베트남에 무역 제재를 이어갔고, 수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전쟁 중 실종된 미군 문제입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전쟁에 나간 자국 군인의 신원 확인과 유해 수습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입니다.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끝까지 찾아야 한다'는 게 미국의 원칙이에요. 그래서 베트남전쟁 당시 실종된 1900여 명의 미군의 행방을 추적하는 것은 두 나라 관계에서 매우 민감한 문제였습니다.
베트남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과 협력하기로 합니다. 1988년부터 미국과 공동조사팀을 꾸려 실종자 유해 발굴을 시작했어요. 산속과 밀림에 직접 들어가 수색을 진행한 것은 대부분 미군 조사단이었지만, 베트남 정부는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조사와 인계를 협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베트남의 진정성을 확인하게 됩니다.
미국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일었습니다. 놀랍게도, 베트남전쟁에 직접 참전했던 정치인들이 나서기 시작한 겁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존 매케인 상원 의원이었어요. 그는 전쟁 중 포로가 되어 5년 넘게 감옥에 갇혀 고문까지 당한 사람이었습니다. 또 다른 인물 존 케리 의원도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사람이었죠.
하지만 이들은 미움 대신 화해를 선택합니다. 오히려 과거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더는 두 나라가 등을 돌리고 있어선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1994년 미국은 베트남에 대한 경제 제재를 해제합니다. 1995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베트남과의 국교 정상화를 공식 발표합니다. 발표 현장에는 매케인과 케리 두 사람도 함께 있었고 이 장면은 미국 사회에 큰 울림을 남겼습니다. 전쟁이 끝난 지 정확히 20년 만의 일이었어요.
미국은 하노이에 대사관을 열었고, 베트남도 워싱턴에 대사관을 설립했습니다. 이후에는 양국 간 무역, 교육, 군사, 인적 교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어요. 이제는 서로를 전략적 파트너라고 부르며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함께 논의할 정도가 되었죠. 지구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요즘, 미국과 베트남 화해의 역사를 한번 돌이켜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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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모이 개혁
개방을 향한 베트남의 첫걸음
유해 발굴 협조
미국의 마음을 연 베트남의 손길
존 매케인·존 케리
화해에 앞장선 베트남전 참전 미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