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하빈 산현초등학교 교사
입력 2025-06-09 09:09teen.mk.co.kr
2025년 07월 14일 월요일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스페인의 전신인 카스티야 왕국 이사벨 1세의 후원을 받아 서쪽으로 모험을 떠나게 됩니다. 지구는 둥그니까 서쪽으로 계속 항해를 하면 언젠가는 중국과 인도에 닿을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오스만제국을 거치지 않고 그들과 교역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항해 끝에 콜럼버스가 도착한 곳은 인도가 아닌 카리브해의 섬들이었습니다. 죽을 때까지 그곳이 인도라 믿었던 콜럼버스는 여러 차례 항해를 떠났지만 그가 스페인에 가져간 것은 소량의 금, 진귀한 조개, 노예 정도였습니다. 결국 스페인에서는 '아메리카는 돈이 안 되는 땅'이라는 회의론이 나왔고 콜럼버스는 실각하여 쓸쓸한 말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의 반전
그들이 원했던 금과 향신료는 없었지만 스페인 왕실은 아메리카에 계속 탐험대를 보냈습니다. 어딘가에는 황금이 넘치는 땅이 있을 거라는 희망과 미련 때문이었죠. 이 노력은 결국 1521년 에르난 코르테스가 아즈텍제국을 멸망시키며 결실을 보게 됩니다.
아즈텍제국의 수도인 테노치티틀란은 금장식, 금 신상, 심지어 금으로 만든 주방도구(!)까지 있을 정도로 금에 진심인 도시였습니다. 이곳에 쳐들어간 코르테스는 황제 몬테수마 2세를 인질로 잡고 궁궐에 있는 금을 긁어모았습니다. 그가 스페인으로 가져간 금이 8t가량이었고 몰래 챙긴 것까지 합치면 20t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코르테스는 곧바로 귀족 작위를 받고 '신 에스파냐' 총독으로 임명되어 거의 신대륙에서 왕처럼 위세를 떨치게 되었죠.
진짜 대박이 터지다
코르테스의 대성공 이후 스페인에서는 탐험과 정복의 붐이 일었습니다. 너도나도 병사를 모집하고 무장을 갖춘 뒤 신대륙으로 향했습니다.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넣는 것도 부족해 자본가들에게 거액을 빌리는 경우도 많았죠.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성공하면 대박, 실패하면 죽음인 도박판에서 대부분은 실패하며 죽거나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이 와중에 1545년 남아메리카 고산지대에서 포토시 은광이 발견됩니다. 이 광산에서 쏟아지는 은은 이전까지의 모든 정복 수익을 압도했습니다. 포토시 은광은 200년 넘게 가동되는데 전성기에는 연간 300t 이상의 은이 생산됐습니다. 곧이어 1546년에는 지금의 멕시코 지역에서 사카테카스 은광까지 발견되며 스페인은 16~18세기 세계 은 생산량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합니다.
스페인의 실책
펠리페 2세 초상화. 안토니오 모로 (1519-1575) 16세기 작품.
그런데 스페인 왕실은 신대륙에서 얻은 막대한 부를 자국의 산업 발전에 활용하지 않았습니다. 1556년 즉위한 펠리페 2세는 그 자금을 대규모 군대와 함대를 편성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는 유럽 각지에서 벌어진 종교전쟁에 가톨릭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적극 개입했으며 프랑스, 오스만제국, 네덜란드 등 사방에서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펠리페 2세는 전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각국의 자본가들에게 돈을 빌렸는데 신대륙에서 그 많은 돈을 벌고도 여러 번 국가 파산을 선언합니다. 스페인은 콜럼버스를 후원했던 이사벨 1세 시기부터 자국 경제의 핵심이던 유대인 상공인과 금융업자들을 종교적 이유로 추방했습니다. 결국 상공업과 금융 기반이 붕괴됐고, 자생적 경제 구조를 갖추지 못한 채 외국 자본에 의존하게 됩니다.
스페인은 신대륙에서 얻은 돈을 산업 육성에 쓰지 못하고 수입품 구입과 전쟁 자금으로 소비했습니다. 반면 프랑스나 네덜란드처럼 금융과 상공업을 꾸준히 육성해온 국가는 점차 경쟁력을 키워나갔고, 스페인에서 흘러온 막대한 은은 이들의 경제를 키우는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신대륙의 자원과 은을 기반으로 하는 무역 덕분에 스페인은 오랜 기간 유럽 최강국의 위세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외국 물자에 의존한 경제는 곧 허약해졌으며, 전쟁과 반복된 국가 파산은 외부의 적들이 결속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국고가 말라버린 스페인은 17세기 후반에 국력을 회복한 프랑스에 유럽 최강국의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아메리카의 은은 스페인을 제국으로 만들었지만, 그 막대한 부가 힘을 오래 지탱해주지는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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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전쟁
1517년 마르틴 루터가 가톨릭교회의 부패를 비판하며 종교개혁을 시작한 이후
유럽에서는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의 갈등이 격화되어
전쟁이 일어나는 일이 잦았습니다.
신 에스파냐
스페인은 아즈텍제국을 정복한 뒤
지금의 멕시코 지역을 중심으로
'신 에스파냐'라는 식민지 행정구역을 설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