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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11일 월요일

프랑스에 은행이라는 이름이 드문 이유

임하빈 산현초등학교 교사

입력 2026-04-06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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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시피 버블 사태 묘사하는 그림 

(출처: Whisk 생성)

 

프랑스의 대표 은행들 이름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크레디아그리콜(신용·농업), 소시에테제네랄(회사), 크레디뮈튀엘(상호신용). 정작 '은행(banque·방크)'이라는 단어는 보이지 않습니다. 우연이 아닙니다. 300년 전 스코틀랜드 출신 금융가 존 로(John Law)가 프랑스 경제 전체를 뒤흔든 뒤 프랑스인들이 '방크'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도망자에서 재무총감으로

 

존 로는 젊은 시절 런던에서 결투로 사람을 죽이고 대륙으로 도망 다니는 신세였습니다. 그러나 떠돌이 생활 중에서도 유럽 각지의 금융 제도를 연구하며 각국 정부에 제안서를 보냈습니다. 토지를 담보로 지폐를 발행하면 경제에 피가 돌듯 돈이 순환하고 나라가 살아난다는 것이 그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 돈이란 곧 금과 은이었고, 지폐는 반드시 금속 보유량만큼만 찍을 수 있다는 게 상식이었습니다. 존 로는 그 상식을 깨려 했지만 당시로서는 너무 파격적이어서 어디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프랑스의 섭정이었던 오를레앙 공의 눈에 그의 제안서가 들어왔습니다. 오를레앙 공은 루이 14세가 남긴 30억리브르의 빚 앞에서 골머리를 앓고 있었습니다. 화폐 재주조, 관직 축소, 증세까지 온갖 방법을 써봤지만 역부족이었죠. 그에게 존 로의 아이디어는 무너져가는 프랑스 경제를 살릴 특효약처럼 보였습니다.

 

오를레앙 공은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1716년 존 로는 민간은행을 설립하고 지폐를 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효과는 놀라웠습니다. 경직됐던 경제에 활기가 돌았고, 세금 납부도 원활해졌습니다. 고무된 섭정은 이 은행을 국가가 인수하도록 해 왕립은행으로 격상시켰습니다.

 

미시시피의 꿈

 

1717년 존 로는 다음 단계로 나아갔습니다. 아메리카 대륙 프랑스령 루이지애나 개발권을 독점하는 미시시피 회사의 경영권을 인수한 것입니다. 그리고 루이지애나에 금은보화가 가득하다는 소문을 퍼뜨리며 주식 매수 신청을 받았습니다. 주식의 흥행을 위해 광부 복장을 한 사람들을 고용해 파리 시내를 행진시키는 퍼포먼스까지 벌였습니다. 그의 계획은 회사의 주식을 국민에게 판 돈으로 나랏빚을 갚는 것이었죠. 1719500리브르였던 주가는 1년 만에 15000리브르, 30배까지 치솟았습니다. 파리 전체가 투기 열풍에 휩쓸렸고, 이 시기 백만장자를 뜻하는 '밀리오네르'라는 단어가 처음 생겨났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루이지애나는 사실 개발도 안 된 늪지대였습니다. 당연히 회사 실적은 기대에 미칠 수 없었고,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주식을 매도하자 주가가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존 로는 걱정하지 말라며 회사가 높은 가격에 주식을 계속 사주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무슨 돈으로요? 왕립은행은 주식 매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지폐를 계속 찍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연히 시중에 풀리는 돈이 많아졌고 불과 4년 만에 50배 이상 불어났습니다. 물가가 치솟고 사람들은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1720년 봄 눈치 빠른 일부 귀족이 조용히 주식을 팔았다는 소문이 퍼지자 패닉이 시작됐습니다. 왕립은행 앞에는 지폐를 금화로 바꾸려는 군중이 몰려들었고, 밀려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압사 사고까지 벌어졌습니다. 주가는 몇 달 만에 다시 500리브르로 곤두박질쳤고, 존 로가 발행한 지폐는 휴지 조각이 됐습니다. 이른바 미시시피 버블이 터진 것입니다.

 

300년이 지나도 남은 상처

 

존 로는 그해 12월 프랑스를 탈출했고, 9년 뒤 베네치아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남긴 상처는 깊었습니다. 평생 모은 돈을 잃은 중산층의 분노는 왕실에 대한 불신으로 굳어졌고, 이 불신은 70년 뒤 프랑스 대혁명의 불씨 중 하나가 됩니다. 프랑스는 이 사건 이후 오랫동안 중앙은행을 세우지 못했으며, 지금도 프랑스 은행들이 '방크'라는 단어 대신 '크레디''소시에테'라는 이름을 주로 사용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산현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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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르

프랑스 혁명 이전까지 쓰인 프랑스의 화폐 단위.

금속 화폐에서 출발했으나 존 로의 실험을 거치며 지폐로 발행됐고, 혁명 이후 프랑(franc)으로 대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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