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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11일 월요일

십자군 전쟁 와중에 무역 장악한 베네치아

임하빈 산현초등학교 교사

입력 2026-02-02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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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젠 들라크루아, 『콘스탄티노플에서 입성하는 십자군』[중앙일보]

 외젠 들라크루아, 『콘스탄티노플에서 입성하는 십자군』[중앙일보]

 

바다 위 118개 섬에 세워진 베네치아는 5세기 게르만족 침입을 피해 온 난민들의 피란처였습니다. 농사지을 땅도 자원도 없었지만, 소금 무역으로 시작해 7세기부터 동로마제국과의 관계를 활용하며 지중해 무역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1095년 십자군전쟁이 시작되자 베네치아 상인들은 이것을 사업 기회로 보았습니다. 십자군 병사들을 실어나르며 막대한 수송료와 함께 동방 항구의 무역 특권을 얻었고, 십자군이 피를 흘리는 동안 베네치아는 돈을 벌었습니다.

 

4차 십자군 원정은 이전의 십자군과는 다른 상황이었습니다. 1201년 프랑스 귀족들이 베네치아를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베네치아 도제 엔리코 단돌로를 만나 협상했습니다. 33500명의 병력과 4500마리 말을 이집트로 실어달라는 요청이었죠. 대가는 무려 은화 85000마르크, 20t이 넘는 은으로 현재 가치 수백억 원에 해당했습니다.

 

베네치아는 엄청난 도박을 걸었습니다. 도제 단돌로는 모든 선박 활동을 18개월간 중단시키고, 온 국력을 쏟아부어 1년 동안 배를 만들었습니다. 만약 이 사업이 실패하면 베네치아공화국의 국운이 흔들릴 판이었습니다.

 

1202년 여름 문제가 생겼습니다. 십자군 병력이 예상보다 훨씬 적게 도착한 것입니다. 약속한 33500명이 아니라 12000명만 모였고, 십자군은 85000마르크 중 49000마르크만 지불했습니다. 베네치아는 절박한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1년 내내 국가 전체가 배만 만들었는데 운송료는 절반만 받은 상황이었으니까요.

 

단돌로가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아드리아해의 자라 항구를 함께 공격해 전리품으로 빚을 갚으시죠." 자라는 헝가리 왕국의 기독교 도시였습니다. 십자군은 이슬람과 싸우러 가는 군대인데 같은 기독교 도시를 공격하자는 제안이었죠. 일부는 반대했지만 돈이 없던 십자군에 선택지는 없었습니다.

 

120210월 십자군은 자라를 공격해 약탈했습니다. 교황이 분노하며 십자군 전체를 파문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자라 약탈로 얻은 돈도 빚을 갚기엔 부족했습니다. 그때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동로마제국 황제의 조카 알렉시우스가 "나를 황제로 만들어주면 20만마르크를 주겠다"고 제안한 것입니다.

 

1203년 십자군의 도움으로 알렉시우스 4세가 황제가 되었지만, 그는 약속한 돈을 지불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12041월 쿠데타로 알렉시우스 4세가 살해되었고, 새 황제는 십자군에 즉시 떠나라고 통보했습니다. 십자군과 베네치아는 돈을 받을 방법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콘스탄티노플을 직접 약탈하기로 한 것입니다.

 

1204412일 십자군은 콘스탄티노플 성벽을 넘었습니다. 3일 동안 역사상 가장 끔찍한 약탈이 벌어졌습니다. 1000년의 역사를 간직한 도시가 생지옥으로 변했습니다.

 

프랑스 십자군 기사들이 파괴적인 약탈에 열중하는 동안 베네치아 상인들은 체계적으로 움직였습니다. 미술품, 보석, 성물, 귀금속을 선별해 자신들의 배로 실어날랐습니다. 90세가 넘은 데다 눈까지 거의 안 보이던 단돌로가 콘스탄티노플 성벽에서 약탈을 진두지휘했을 정도로 베네치아 상인들은 독하게 움직였습니다.

 

콘스탄티노플 약탈로 베네치아는 상상을 초월하는 부를 얻었습니다. , , 보석뿐 아니라 콘스탄티노플 일대의 주요 항구와 섬들을 차지했습니다. 크레타섬을 포함한 에게해의 전략적 거점들을 손에 넣은 것입니다.

 

이제 베네치아는 지중해 동부 무역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인도와 중국에서 오는 향신료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를 거쳐 베네치아로 들어왔는데, 베네치아 상인들이 이 무역을 거의 독점하며 5~10배의 이익을 거뒀습니다.

 

13세기부터 베네치아는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베네치아 상인들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가장 영향력 있는 중간상인이었죠. 후추, 계피, 정향 같은 향신료는 중세 유럽에서 금만큼이나 귀했고, 베네치아는 이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았습니다.

 

이 같은 베네치아의 독점 체제는 1498년 바스쿠 다가마가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도착할 때까지 약 200년이나 유지되었습니다. 십자군전쟁의 진정한 승자는 예루살렘을 탈환한 기독교도, 영토를 지킨 이슬람도 아닌 전쟁을 사업으로 만든 베네치아였던 것입니다.

산현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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