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일 경제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
입력 2023-06-01 14:13teen.mk.co.kr
2025년 12월 06일 토요일
판매자-소비자 간 '정보비대칭'
신뢰 부재로 거래 성사 어려워
둘 사이 연결해주는 플랫폼기업
'믿을 만한지' 판단근거 제공 필수
폐쇄 사회서 평판 위력적이었듯
기술 발달한 지금도 신뢰 중요해

매경DB
'타이레놀'은 모두가 잘 아는 해열제 혹은 진통제입니다. 2021년과 2022년에는 코로나19에 감염되거나 백신을 접종한 분들이 해열제로 사용하는 바람에 약국에서 구하기 힘들 때도 있었습니다. 이런 타이레놀이 지금은 흰색 알약으로 돼 있지만 과거에는 캡슐 형태였던 것을 알고 계신가요?
이렇게 타이레놀의 형태가 크게 변화한 데는 의미 있는 사건이 있습니다. 1982년 시카고에서 7명이 타이레놀을 복용하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후 타이레놀 제조사인 존슨앤드존스사는 누군가 타이레놀에 청산가리를 오염시킨 것을 알고 언론을 통해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립니다. 존슨앤드존슨사는 기존에 유통되고 있는 약을 전량 폐기 처분하고, 캡슐형 타이레놀에서 지금의 알약형 타이레놀로 변경했습니다. 존슨앤드존스사는 기존 약을 회수하고 폐기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발생함에도 기업의 신뢰와 명성을 지키기 위해 엄청난 대가를 지불한 것입니다.
경제학은 기업이나 개인의 이익 추구를 최우선으로 생각하지만 '정직' '신뢰' 역시 이에 못지않은 중요한 가치로 꼽히는 항목입니다. 오늘날 80억명 인구가 지구에 함께 살면서 거짓말을 해서 서로 믿을 수 없게 된다면 글로벌 경제는 파행으로 갈 수 있습니다. 경제학에서는 경제 주체들이 서로를 속이는 현상을 '정보비대칭'으로 설명합니다. 정보비대칭은 거래하는 당사자들이 알고 있는 정보가 서로 같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경제학에서 거래 당사자, 즉 물건을 파는 사람과 물건을 사는 사람 사이에 서로 가지고 있는 정보가 다를 때 정보비대칭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자주 구입하고, 표준화된 제품은 정보비대칭 현상이 거의 발생하지 않습니다. 콜라를 마실 때 콜라의 맛이나 무게에 대한 정보는 판매하는 사람 못지않게 소비자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판매자가 상품을 속일 수 없는 구조입니다. 가짜를 팔거나 내용물이 부족하면 바로 소비자가 알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정보비대칭이 상대적으로 큰 시장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시장에서는 상품에 대한 정보를 판매자가 더 많이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중고 제품이 거래되는 시장에서 이런 현상이 확연히 나타납니다. 대표적인 중고 거래 시장은 중고 자동차 시장입니다. 중고차를 구입할 때 차를 사는 사람은 잠깐 차를 둘러보거나 시험운전을 해볼 수는 있지만 오랜 시간 꼼꼼히 살펴볼 수 있는 기회는 얻지 못합니다.
정보비대칭이 심각한 시장에서는 거래가 쉽게 발생하지 않습니다. 차를 구매할 때 구매자는 자신이 알지 못하던 결함이 있을 것 같아 판매자가 제시하는 원래 가격을 깎으려고 합니다. 그러면 좋은 차의 주인은 자동차 가격을 깎아주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반면 겉보기에는 멀쩡하지만 실제 결함이 있는 자동차 주인은 구매자의 말을 승낙하고 낮은 가격에 판매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정보비대칭이 심각한 시장에서는 양질의 상품은 거래되기 어렵고 불량한 제품 위주로 거래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경제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역선택(Adverse Selection)'이라고 합니다.
최근에는 이런 정보비대칭으로 발생하는 시장 실패를 해결하면서 많은 수익을 얻는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플랫폼 기업이라고 부르는 '에어비앤비' '구글'과 같은 회사가 시장의 정보비대칭을 보완하면서 엄청난 수익을 얻고 있습니다. 관광지 숙소나 식당은 실제로 그곳에 가서 경험하지 않는 이상 정보를 알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선뜻 예약을 하거나 찾기 힘든 상황에서 플랫폼 기업은 기존 이용자의 리뷰나 평점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예약을 쉽게 할 수 있는 메뉴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시장에서 소비자와 기업이 서로 믿을 수 있게, 즉 신뢰를 만들어주는 일을 하는 회사. 앞서 말씀드린 플랫폼 기업이 막대한 이익을 얻게 된 것입니다.
현대 사회와 달리 과거에는 폐쇄적이고 소규모 공동체인 시골 마을에서는 개인과 집안의 평판 관리가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폐쇄적인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일시적인 정보비대칭 상황에서 다른 사람을 속여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있어도 그것을 쉽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도록 하는 보이지 않는 안전장치가 있었습니다.
가령 '누구네 아들은 품앗이를 하면 건성건성 눈가림이나 한다'는 평가를 얻으면 이는 곧 마을의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그가 속한 가족 전체의 평판이 떨어집니다. 다른 집의 일터에서 대충 모종을 심거나 꼼꼼히 잡초를 뽑지 않으면 금방은 표시가 나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결과가 드러나 나쁜 평판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하루 일을 편하게 해서 얻는 육체적인 이득보다 집안의 평판이 떨어져 향후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인구 80% 이상이 도시에 살고, 도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익명성이 높아져 주거 이동이 빈번해지자 과거와 같은 평가 방법으로는 정보비대칭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됐습니다. 그래서 산업화 초기 도시에서는 불량식품이 시중에 자주 유통되었고, 겉은 멀쩡한데 내구성이 떨어지는 제품을 시장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지금은 통신기술이 발전하면서 평판과 신용 관리를 신경 써야 할 시기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