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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06일 토요일

종이지폐·동전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최병일 경제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

입력 2023-05-04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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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집문서, 즉 부동산 등기증서를 우연히 줍는다면 그 집 주인이 될 수 있을까요? 당연히 부동산 등기증서만으로는 집주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물론 부동산 등기권리증을 가지고 있으면 이 사람이 상당 부분 집주인일 가능성이 크지만 지금의 한국에서는 단순히 물리적인 등기권리증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집주인임을 나타내는 결정적인 근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사실 집주인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증거는 부동산 계약서를 근거로 등재된 대법원의 전자 등기상 명의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종이로 돼 있던 집문서가 이제는 모두 전산화된 것입니다. 오늘날 종이로 된 부동산 권리증서는 과거의 유산일 뿐 실제적 효력은 거의 없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최근 현금이 부동산권리증서, 주식 증서와 비슷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지난 3월부터 '현금 없는 버스'라는 안내가 붙어 있는 버스를 길거리에서 자주 보았을 겁니다. 이제 이런 표시가 있는 버스들은 반드시 교통카드를 소지해야 탈 수 있습니다. 커피 전문점 가운데도 현금을 받지 않는 매장이 늘고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부동산권리증서나 주식처럼 현금, 즉 물리적인 화폐가 사라질까요?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현금이 없어진다고 '돈' 즉 중앙은행이 발행하고 관리하는 법정화폐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부동산 등기나 주식과 같이 물리적 실체가 없이 모두 전산화된다는 것입니다. 현재와 같은 종이 화폐와 동전이 없어지고 모든 화폐는 카드, 컴퓨터, 휴대전화와 같은 전자 장치를 기반으로 결제가 진행됩니다.

그럼 지금 버스나 카페들처럼 정부가 현금 없는 사회를 선언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버스에서 이제 종이 승차권이나 토큰이 사라지면서 과거에 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던 토큰 판매소가 거의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렇다고 일반 은행이 사라질 수는 없습니다. 은행은 여전히 대출, 저축, 금융상품 설계 및 판매와 같은 기존 업무는 물리적인 화폐가 없어져도 필요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해야 합니다. 종이 증권이 사라졌지만 증권예탁원과 증권거래소가 여전히 존재하고 이전보다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을 보면 은행은 사라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현금 즉 물리적인 화폐가 없어지면 어떤 직업이 사라질까요? 은행원이 아니라 은행 강도가 사라지게 됩니다. 실제로 현금이 거의 사라진 덴마크에서는 2000년대 들어 200건 이상 발생했던 무장 강도 사건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2022년에는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즉 현금이 없어지면 지금보다 좀 더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있습니다. 현금이 사라지면 한국은행은 매년 종이돈과 동전을 발행하고 관리하는 데 발생하는 1000억원 이상의 비용을 감축할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현금이 사라지면 정부의 수입 즉 세금 징수액이 크게 증가할 수 있습니다. 과세 당국이 그동안 세금을 걷지 못했던 지하경제를 포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금이 사라지면 모든 거래는 전산으로 기록되고, 세무 당국은 이런 자료를 토대로 모든 거래와 수익을 포착할 수 있게 됩니다. 결혼식 축의금, 대학생들의 과외 활동과 같은 것들이 넓은 의미에서 지하경제입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지하경제 규모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20%가량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우리 정부의 세수가 대략 400조원인데 현금이 사라진다면 이론적으로는 세율을 인상하지 않아도 70조~80조원의 세금을 추가로 징수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현금이 없는 사회는 여러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범죄가 사라지고 정부 재정이 건전해집니다. 그런데 모든 일에는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습니다. 현금이 사라지면 정부는 국민이 10원짜리 하나를 쓰더라도 모든 행동을 다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정부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고 정부가 민간을 일일이 감시하는 '빅브러더'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입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현금이 사라지면 또 다른 이점이 있습니다. 바로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시행할 수 있게 됩니다. 중앙은행은 경기가 어려울 때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통화량을 증가시키고 이자율을 인하합니다. 기업이 건물이나 기계를 살 때 빌리는 돈의 이자가 줄어들어 소비와 투자가 증가합니다. 그런데 2017~2018년 유럽과 일본 중앙은행은 물가는 오르지 않고 경기가 어려워지자 기준금리를 마이너스로 인하했습니다. 금리가 마이너스로 하락하면 은행에 돈을 맡기고 이자를 얻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물건들처럼 오히려 보관료를 지불해야 합니다. 가령 100만원을 예금했는데 1년 후에 찾을 때는 98만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은행이 이자를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보관료를 징수한다면 사람들은 개인 금고를 만들거나 땅을 파서 돈을 묻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경기가 침체해 금리를 인하했는데 돈이 땅속이나 금고 속으로 들어가 정부의 정책 의도와 달리 경제가 더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일본이나 유럽 중앙은행이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한 사례는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중앙은행에 예치한 돈에 대해서만 이자를 지급한 것이 아니라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현금이 사라지고, 모든 사람이 디지털로 된 화폐를 보유하게 되면 정부가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해도 땅을 파거나 물리적인 금고에 저장할 수 없습니다. 즉 정부에는 통화정책 카드가 하나 더 생기는 것입니다.

이처럼 물리적인 화폐가 사라지면 우리 사회는 다양한 장단점에 노출되게 됩니다. 한국의 경우 90% 이상의 거래가 현금이 아닌 디지털 수단으로 결제됩니다. 따라서 현금이 축소되고 결국 사라질 가능성은 클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래서 이제는 앞서 소개한 디지털 화폐의 특징을 고려하고 디지털 소외 계층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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