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일 경제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
입력 2023-03-09 17:14teen.mk.co.kr
2025년 12월 06일 토요일

【게티이미지뱅크】
사람들은 자주 가는 공원이나 카페에 자신이 좋아하는 자리를 정해둔다. 일단 그곳에 가면 항상 앉던 곳에 자리를 잡고, 늘 주문하던 음식을 시킨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행동을 두고 보수적 성향이 강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변화하는 시대, 혁신을 좋아하는 신인류가 여전히 매번 정해진 행동 양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심리학자들은 '현상유지편향(Status Quo Bias)'을 기반으로 변화를 싫어하는 인간 행동의 패턴을 설명한다. 심리학자 가운데 일부는 원시시대 인류가 처한 환경이 현상유지편향을 낳았다고 분석했다. 원시인에게 잠자리로 쓸 동굴과 어떤 버섯을 먹을지를 결정하는 일은 생명을 담보로 하는 위험한 선택이다. 따라서 원시인이 특별한 변화나 확실한 정보가 없을 때 기존에 해왔던 검증된 선택지만 고르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 옷을 고르고, 버스를 탈 때 자리를 선택하는 것은 생명과 무관한 일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기존 선택을 바꾸지 않는 현상은 행동경제학자에게 좋은 연구 소재가 됐다.
과거 독일과 오스트리아 국민의 장기 기증 비율에서 극단적인 차이가 나타났는데 이는 현상유지편향이 현실에서 발생한 대표적 사례다. 대부분의 독일과 오스트리아 국민은 인종과 문화적 측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두 나라 국민의 사망 후 자신의 장기를 기증하는 일에 대한 찬성 비율은 독일이 12%, 오스트리아가 99%로 큰 차이를 나타냈다. 행동경제학자들은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한 원인을 장기 기증 동의를 끌어내는 방식에서 찾았다.
독일에서 장기 기증자가 되려면 기증에 찬성한다는 동의서를 제출하는 적극적인 행동을 취해야 한다. 반면 오스트리아 정부는 장기 기증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특별히 밝히지 않으면 장기 기증을 선택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즉 독일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반적인 상태에서 적극적으로 의사 표현을 해야 장기 기증을 할 수 있고, 오스트리아는 적극적으로 의사 표현을 해야 장기 기증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한 시스템의 작은 차이가 기증률의 극단적인 차이를 만들어낸 것이다.

행동경제학자들은 현상유지편향이 발생하는 이유를 단순히 원시시대의 습관으로만 제한하지 않고, '보유 효과(endowment effect)'와 '손실 회피(loss aversion)' 성향이라는 원인을 추가적으로 발견했다. 사람들은 일반적인 상황에서 특별한 차이가 없다면 내가 가진 것을 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보유 효과'라고 한다. 즉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괜찮아 보이고, 혹시 쓸데없이 괜히 바꿨다가 손해 볼 것에 대한 두려움, 즉 '손실 회피' 성향이 합쳐져 현상유지편향을 만든다는 것이다.
현상유지편향은 최근 '구독경제'의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하는 데 주요 변수가 됐다. 구독경제란 일정 금액을 미리 지불하고 원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정기적으로 공급받는 유통 형태를 말한다. 과거 신문이나 잡지와 같은 정기 간행물에 특정해 적용됐던 비즈니스 모델이 최근에는 여러 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대표적인 회사가 달러셰이브클럽(DSC)인데 이 기업은 매월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면도날을 배달해주는 아이템을 흥행시켜 유니레버에 10억달러를 받고 회사를 팔았다. 이는 구독경제가 일반 상품 산업으로 전이돼 성공한 대표적 사례다.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에서 구독경제는 일반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자리 잡고 있다. 넷플릭스를 비롯해 최근 어도비와 마이크로소프트까지 비즈니스 모델에 구독경제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 기업들이 과거 프로그램을 고가에 판매하고 소유권을 이전해주는 방식에서 매월 정액의 요금을 받고 해당 기간 라이선스를 대여해주는 방식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변경한 것이다.

기업들은 이런 구독경제와 연관된 상품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앞서 설명한 인간의 현상유지편향을 적극 활용해 이윤을 증대시키고 있다. 기업들은 일시불로 판매하던 제품 판매 방식을 구독 형태로 바꾸면서 전보다 소비자가 피부로 체감하는 가격을 현저히 낮출 수 있게 됐다. 이는 소비자의 비용 지불에 대한 심리적 부담을 감소시켜 판매량 증가로 이어진다. 한번 구독 신청을 하고 나면 기존의 의사결정을 쉽게 변경하거나 취소하지 않는 소비자의 현상유지편향을 이용해 장기적으로 매출을 증대시킬 수 있게 됐다. 음원 사이트나 콘텐츠 애플리케이션 공급자가 처음 1·2개월은 무료로 상품을 제공하거나 높은 할인율을 적용한 가격을 제시해 고객이 상품을 구독하도록 유도한 후 소비자가 무의식적으로 장기간 구독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매출을 증대시키는 전략이 대표적이다. 특히 해지 과정을 번거롭거나 복잡하게 만들면 전략의 효과는 더욱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