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일 경제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
입력 2022-11-11 09:24teen.mk.co.kr
2025년 12월 06일 토요일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푸근하고 인자한 사랑의 아이콘이다. 조부모를 향해 손주가 느끼는 사랑과 이해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굳이 유교에서 강조하는 '장유유서'를 몰라도 아이들은 좋아하고 맛있는 음식을 조부모에게 양보할 의향이 있다. 물론 할아버지, 할머니도 이런 손주를 위해 더 많은 것을 희생하고 양보한다.
그런데 최근 전 세계적으로 저출산·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됨에 따라 돈독한 조손(祖孫) 관계는 제한된 예산을 두고 경쟁하는 관계가 됐다. 2012년 남유럽의 재정위기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은 공공복지 지출이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다가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다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역사 속 많은 왕조와 제국은 군사, 정치, 산업에 국가 자원을 투입했다. 가난한 사람들과 취약계층을 돕는 일은 국가의 부수적인 사업 정도로 생색내기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최근 OECD 회원국들의 평균 공공사회복지 예산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약 20%다. OECD 평균 재정 지출 규모가 GDP 대비 평균 47%인 것을 생각하면 공공복지 예산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이는 국방, 교육, 행정, 사회간접자본(SOC)에 지출하는 예산보다 단연 공공복지 정책에 지출하는 예산이 많다는 의미다. OECD 평균을 어림잡아 계산하면 정부 예산 가운데 대략 42%를 공공복지 지출이 차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공공복지 지출이 증가하고 정부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효율성 검증이 좀 더 필요해졌다.
공공복지에 대한 지출 규모가 확대되면서 사회복지 영역에도 '효율'이나 '예산 제약' 같은 개념들이 등장하게 됐다. 2019년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아브히지트 바네르지 교수와 에스테르 뒤플로 교수, 하버드대의 마이클 크레이머 교수는 가난한 나라에 투입된 원조와 자원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연구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이제는 공공복지 규모가 커진 만큼 공공정책의 효율성을 적극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막대한 규모의 예산과 사업들이 비효율적으로 집행되면 경제 전반의 인센티브 구조 왜곡과 도덕적 해이로 생산성과 효율성이 저해될 수 있다. 실제 2012년 남유럽의 재정건전성 악화와 생산성 저하는 지나친 복지 재정 지출 때문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복지 정책은 어려운 계층을 돕는 소비적 성향이 강한 사업이다. 저소득 가계나 연령층에 현금으로 소득을 보전해주면 이는 단편적 소비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교육이나 보건과 관련된 지출은 인적자본 축적과 밀접하게 연결돼 장기적으로는 실물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즉 잘 설계된 복지 정책은 소비가 아닌 투자 성격의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OECD 회원국들의 공공복지 예산은 다른 어떤 정부 부문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의 GDP 대비 재정 지출 규모는 대략 33%이며, 이 가운데 공공복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3분의 1 수준이다. 공공지출 규모는 저출산·고령화 현상과 소득 불균등 심화로 향후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고령인구가 늘고,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함에 따라 노령연금 관련 지출이 전체 공공복지 예산 가운데 26.4% 이상을 차지한다. 경제활동을 지속할 수 없는 고령인구에 대한 지원은 불가피하다. 또 고령인구 증가에 따라 의료복지 지출도 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감소하는 출산율을 반등시키기 위해 각국에서 여러 노력을 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가족수당과 같은 출산 장려 프로그램이 차지하는 지출 규모도 전체의 10% 이상에 달한다.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공공사회복지 지출이 증가할수록 해당 경제의 성장과 생산성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OECD의 경우 공공사회복지 지출을 총 9개 영역으로 구분해 회원국들의 지출 규모를 비교하고 자료를 정리해두고 있다. 9개 영역은 노령연금, 가족수당, 실업급여, 의료비 지원, 노동시장 참여 유도 등으로 구성돼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공공지출은 전반적으로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 정책은 경제와 달리 반드시 효율성이 첫 번째 덕목은 아니다. 그러나 지속가능성을 위해 효율성과 생산성은 결코 간과할 수만은 없다. 그래서 9가지 항목 가운데 노동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생산적 복지 정책은 경제 성장과 생산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너무 자명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동안 복지 지출에 대한 평가는 정교하지 못했다. 다분히 소비적 성향이 강한 지출은 경제에 부정적이며, 투자적 복지사업은 긍정적일 것이라고 추정했는데 이제 데이터가 많아지고 분석 기법이 발전할수록 실증적인 증거가 나타나고 있다.
글 시작에서 소개한 것과 같이 한 가정에서 할아버지와 손주는 서로 양보할 수 있다. 이제 국가라는 큰 공동체에서도 지속가능성과 미래를 위해 서로 필요한 것들을 명확히 하고, 양보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야 할 때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한정된 복지 예산을 투입할 때는 장기적인 성과를 고려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