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지 인턴기자
입력 2026-09-07 09:11teen.mk.co.kr
2026년 10월 10일 토요일
서울역 승강장에 정차한 KTX 산천-SRT 중련 열차. (사진=연합뉴스)
명절 연휴를 앞두고 고향으로 가는 기차표를 잡기 위한 예매난이 벌어집니다. 터치 몇 번에 기쁨과 좌절이 엇갈리고, 표를 구하지 못해 결국 할머니 댁에 가지 못하는 상황도 종종 생깁니다. 그런데, 왜 명절마다 선착순 매표를 해야 하는 걸까요? 매번 일어나는 예매 전쟁 속에는 흥미로운 경제 원리가 숨어 있습니다.
명절 연휴에는 귀성길에 오르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기차표 수요가 급증합니다. 하지만 표를 사려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해서 판매할 기차표의 수량을 곧바로 늘릴 수는 없습니다. 철로를 더 깔고 열차를 추가로 도입하려면 수년의 시간과 큰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기차표를 원하는 사람은 늘어났지만 팔 수 있는 기차표의 개수는 그대로이기 때문에 공급량이 수요 변화에 반응하지 못하는 공급의 완전 비탄력성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경제 원리에 따르면 이렇게 물건의 수량은 그대로인데 사려는 사람이 많아지면 가격이 상승하게 됩니다. 가격이 오르면 승차권이 필요한 사람만 구매하게 되고, 기차를 탈 생각이 없지만 일단 사고 보려는 구매자가 줄어듭니다. 결국 승차권의 개수와 표를 사려는 사람의 수가 일치하는 지점에서 균형가격이 형성되고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됩니다.
그러나 명절 연휴나 평일이나 기차표의 가격은 언제나 같습니다. 그 이유는 철도사업법 제9조에 따라 기차표의 가격이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국토교통부 장관이 정한 요금 상한선을 넘길 수 없기 때문에 수요가 늘어나도 가격을 올릴 수 없습니다. 이렇게 가격으로 재화를 효율적으로 분배할 수 없게 되자 가격 대신 시간으로 표를 나누는 선착순 예매 방식이 도입됐습니다.
하지만 선착순으로 기차표를 살 수 있게 하면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층과 장애인 등이 표를 구하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이처럼 디지털 숙련도가 기차표를 사는 기준이 되면 교통약자의 이동권이 침해될 수 있습니다.
철도 당국은 이러한 상황을 막기 위해 교통약자를 위한 예약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이에 따라 코레일은 명절 기간마다 임산부, 장애인, 만 65세 이상 승객, 국가유공자가 먼저 표를 예매할 수 있도록 사전예매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사전예매자는 인터넷뿐 아니라 전화로도 표를 결제할 수 있으며, 예매 시간도 더 넉넉하게 보장받습니다. 일반 승객의 예약 시간은 3분이지만, 사전예매자는 5분 동안 예약할 수 있습니다. 특히 표를 시각·지체장애인 등은 최대 30분까지 예매 시간이 제공됩니다.
결국 명절마다 '피켓팅'을 하는 이유는 승차권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가격도 상승해야 하는데, 법에 따라 가격 인상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가격상한제로 인해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깨진 상황에서 암시장이 형성된다는 점입니다. 기차를 이용할 생각이 없음에도 표를 구매한 후 웃돈을 붙여 되파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코레일은 이러한 암표 거래를 막기 위해 '미스터리 쇼퍼' 단속과 '암표 제보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미스터리 쇼퍼' 단속은 직원이 직접 구매자로 위장해 판매자의 정보를 특정하는 방식으로, 암표 판매자는 회원 탈퇴뿐 아니라 경찰에 고발될 수도 있습니다. 암표 제보방의 경우 제보가 실제 암표 거래가 확인되면 제보자에게 할인쿠폰을 제공해 암표가 근절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식입니다.
명절 기차표 시장에서는 도덕적 해이 현상도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표를 취소할 때 내는 위약금이 적다 보니 고향에 갈 구체적인 계획이 없어도 '일단 표부터 잡고 보자'라는 마음으로 여러 장의 표를 예매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정작 기차를 꼭 타야 하는 사람이 표를 구하지 못하고, 열차 출발 바로 직전에야 취소 표가 우르르 쏟아지는 불합리한 일이 발생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코레일은 지난해 설 명절부터 취소 수수료를 올렸습니다. 일단 예매하고 보자는 생각 때문에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볼 상황을 막기 위해 기차표를 취소할 때 돈을 더 내는 불이익을 준 것입니다. 수수료 부담이 커지면 함부로 예매하지 않게 돼 정말로 기차를 타야 하는 사람들에게 표가 돌아가는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결국 명절 기차표 피켓팅은 단순히 예매 시스템의 문제가 아닌 '공급의 단기 비탄력성'과 '가격상한제'라는 경제적 원리가 만들어낸 현상입니다. 기차표값을 올리지 않고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는 대신 긴 대기 시간, 암표 단속, 더 많아진 취소 수수료라는 방식의 대가를 치르며 기차표를 예매하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