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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0일 토요일

은행의 영역 확장…˝이제 미술품도 보관해줘요˝

이건우, 김주원 인턴기자

입력 2026-09-07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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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트원' 2층 개방형 수장고에 보관·전시된 미술품들. [사진 = 김주원 인턴기자]

 

"고객님, 미술품 두 점 맡기시는 거 맞으실까요?"

 

예금과 대출이 먼저 떠오르는 은행에서 미술품을 맡아 보관하고 관리하는 일이 실제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어느 은행에서는 실제로 오가는 이야기입니다. 은행은 어떻게 미술품까지 다루는 것일까요? 그 답을 찾아 금융권 최초의 개방형 수장고라는 하나은행 복합문화공간 '하트원(H.art1)'을 찾았습니다. 을지로 골목을 걷다 보면 유독 눈길을 끄는 건물 하나와 마주합니다. 위층 유리벽은 청록빛으로 일렁이고, 그 유리 위로 'STORAGE' 'Hana' 같은 글자들이 리듬을 타듯 흩뿌려져 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면 'Hana Bank Art Storage'라는 이름이 또렷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계단을 밟아 2층으로 오르자 개방형 수장고가 펼쳐집니다. 벽면을 채운 랙마다 하나은행이 소장한 엄선된 작품들이 걸려 있는데, 품은 색이 저마다 다릅니다. 현대적인 작품이 있는가 하면, 세월이 곱게 내려앉은 작품도 있습니다. 서양화와 동양화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걸려, 시선을 옮길 때마다 새로운 분위기가 반겨줍니다. 원래는 소유자만 볼 수 있던 작품을 손님 누구나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여느 수장고와 다른 '개방형'의 매력입니다.

 

한 층을 더 오르면 사뭇 다른 공기가 감돕니다. 이곳은 VIP 손님을 위한 프라이빗 수장고입니다. 회화는 물론 판화, 조각, 서예, 설치 작품까지 두루 보관합니다. 큰 작품을 세워 거치하는 랙 타입과 여러 점을 나눠 보관하는 선반 타입 수장고가 함께 갖춰져 있습니다. 유료로 운영되는 곳으로, 실제 고객의 미술품 신탁과 보관이 이뤄지는 현장입니다.

 

고객의 자산을 맡아 지키고 관리하던 은행의 익숙한 일이 이곳에서는 미술품을 대상으로 똑같이 이뤄지고 있는 셈입니다. 하트원을 한 층씩 올라오는 동안 은행과 미술의 경계는 어느새 허물어져 있었습니다. 작품을 감상하고, 맡기고, 사고파는 일까지 한 공간에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예술과 금융이 한자리에서 만나는 풍경이 익숙한 은행의 모습을 다시 보게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처음의 궁금증이 다시 떠오릅니다. 미술관도, 화랑도 아닌 '은행'이 어떻게 예술의 영역까지 잘 해낼 수 있는 것일까. 흥미롭게도 그 답은 은행이 원래부터 잘하던 일 안에 숨어 있습니다. 은행은 그동안 고객이 맡긴 현금과 자산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관리해왔습니다. 하나은행 아트뱅크는 이러한 은행의 자산관리 영역을 미술품으로 확장한 서비스입니다.

 

은행 금고에 현금과 중요 서류를 보관하듯, 미술품 역시 온도와 습도 등 보관 환경을 세심하게 관리하고 외부 위험으로부터 보호합니다. 오랜 기간 금융자산을 관리하며 쌓아온 은행의 보안·관리 역량을 미술품으로 넓힌 것입니다.

 

경제학에서는 이렇게 한 기업이 이미 갖춘 설비나 노하우, 신뢰를 새로운 상품·서비스에 함께 활용해 각각 따로 갖출 때보다 비용을 아끼고 그만큼 이익을 늘리는 것을 일컬어 '범위의 경제'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어 한 회사가 물건을 배송하기 위해 이미 물류센터와 배송망을 갖추고 있다면, 새로운 상품을 판매하더라도 물류시설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기존 시설과 인력을 함께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은행이 예금과 대출뿐 아니라 펀드, 보험까지 영역을 넓혀온 것도 비슷한 원리입니다.

 

은행이 미술품시장에 뛰어드는 이유는 범위의 경제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미술품시장에는 금융시장과 다른 특징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정보의 비대칭'입니다. 정보의 비대칭이란 거래하는 두 사람이 가진 정보의 양이나 질에 차이가 나는 것을 말합니다. 주식을 예로 들어볼까요? 주식은 매일 갱신되는 종가와 거래량, 기업의 공시 자료처럼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 촘촘히 쌓여 있습니다. 그래서 값이 적정한지, 믿을 만한 상품인지 사는 사람도 비교적 쉽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술품은 이런 표준화된 정보가 부족합니다. 이 작품이 진짜인지, 상태는 괜찮은지, 적정 가격이 얼마인지를 파는 사람이 사는 사람보다 훨씬 더 잘 아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정보의 격차가 클수록 사려는 사람은 '혹시 손해를 보는 거 아닐까' 망설이게 되고, 결국 시장 전체의 거래가 위축될 수 있습니다. 이때 누군가 진위와 상태를 검증하고, 그 결과를 안전하게 지켜준다는 믿음만 있어도 거래는 한결 쉬워집니다. 은행이 갖춘 보안 시설과 신탁 제도에 미술품 전문가의 감정 역량이 더해지면 진위를 가리는 일부터 안전한 보관, 나아가 필요할 때 되팔아 현금화하는 과정까지 한곳에서 처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건우·김주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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