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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3월 10일 화요일

호텔 들어서니 좋은 향 가득한 까닭은

방예별 인턴기자

입력 2026-02-09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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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호텔페어

2026 호텔페어를 찾은 관람객들이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체크인 도와드릴까요?" 대신 "명함 좀 주시겠어요?"라는 말이 쏟아지는 이곳은 '2026 호텔페어' 현장입니다. 행사장에 들어서자마자 은은한 시트러스 향기가 코끝을 스쳤어요. 호텔 로비에 온 듯했지만 눈앞 풍경은 휴양지와 거리가 멀었습니다. 캐리어 끄는 관광객 대신 양복 입은 바이어들이 열띤 흥정을 벌이고 있었거든요.

 

우리가 즐기는 '호캉스'가 물 위에 뜬 우아한 백조라면 이곳은 물속에서 치열하게 움직이는 물갈퀴질의 현장입니다. 매트리스부터 샴푸, 청소 로봇, 예약 관리 프로그램까지 호텔이라는 거대한 백조를 띄우기 위해 작동하는 경제 태엽을 하나하나 살펴봤어요.

 

전시장은 스위트룸을 통째로 옮겨 온 듯했어요. 당장이라도 눕고 싶은 안락한 소파와 침대, 은은한 편백 향이 감도는 홈 사우나는 영락없는 휴양지를 재현하고 있었습니다. 치열한 비즈니스 현장 한복판에 가장 완벽한 쉼이 함께했죠.

 

하지만 평온함도 잠시, 바로 옆 부스에서는 또 다른 풍경이 나타났습니다. 영화 '패신저스'를 본 적이 있나요? 우주선 바에서 로봇 바텐더가 능숙하게 술을 건네던 장면 말이죠. 웅성거리며 사람이 몰린 곳에는 인간 대신 로봇 팔이 자리 잡고 쉴 새 없이 칵테일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로봇이 그저 신기해 보일 수 있지만 호텔 업계에는 살아남느냐가 걸린 문제예요. 저출산과 고령화로 국내 호텔 한 곳당 부족한 인력이 평균 10.9명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거든요.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된 상황이죠. 현장에서 만난 업체 관계자는 "과거엔 직원의 미소를 앞세웠지만 이제는 인건비가 상승하고 인력이 부족해 일부를 기계에 맡기는 디지털 전환(DX)이 필수가 됐다"고 설명했어요.

 

로봇이 땀 흘려 뛰는 호텔을 움직이는 손과 발이라면 그 뒤엔 돈을 벌어다주는 똑똑한 두뇌 기술도 숨어 있어요. 혹시 주말 야구 경기나 콘서트가 있는 날 행사장 근처 호텔 방값이 널뛰는 모습을 본 적이 있나요? 사람이 일일이 가격표를 바꾼다고 생각했다면 착각이랍니다.

 

인공지능(AI)이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실시간으로 가격을 조정하고 있거든요. 이를 '다이내믹 프라이싱(Dynamic Pricing)'이라고 해요. AI가 주변 경쟁사 요금, 실시간 예약 속도, 남은 객실 수를 칼같이 분석해 가장 잘 팔릴 요금을 찾아내는 거죠.

 

하지만 치밀한 숫자 계산만으로 고객의 지갑을 열 수는 없습니다. 기술로 채우지 못하는 마지막 빈틈인 고객의 마음을 훔치는 전략은 따로 있어요.

 

"기억하기에 향보다 좋은 건 없다." 한 어메니티(편의용품) 부스에 적힌 문구였습니다. 페어에는 에르메스·몰튼 브라운 같은 명품부터 다이슨 헤어드라이어, 호텔 고유 향을 담은 디퓨저, 알록달록한 배스밤까지 다채로운 향연이 펼쳐졌어요.

 

과거에는 깨끗한 방과 푹신한 침대가 경쟁력이었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소비자는 이제 침대라는 물건 하나가 아니라 그곳에서 보내는 특별한 시간과 기억을 사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엽니다. 이른바 '경험 경제'입니다. 오감에 만족을 주는 향기와 최고급 어메니티는 경험 가치를 높이는 장치인 셈이죠.

 

호텔이라고 하면 으레 화려한 샹들리에나 서양식 인테리어를 떠올리기 쉬워요. 하지만 전시장 한편에서는 자개장과 병풍, 한복을 배치한 전통 부스가 눈에 띄었어요. 최첨단 기술이 가득한 현장에서 옛 모습을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해답은 숫자에 있습니다. 야놀자리서치는 2026년 방한 외국인 관광객이 사상 최대 규모인 2126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어요. 한국인이 서양식 공간에서 이국적인 매력을 느낀다면 한국을 찾은 외국인은 '가장 한국적인 순간'에 열광하죠.

 

이처럼 타깃 고객을 명확히 설정해 맞춤형 경험을 제공하는 전략을 '핀셋 마케팅'이라고 불러요. 늘어나는 외국인 관광객을 핀셋으로 집어내듯 세심하게 고르는 거죠. 고객이 누구냐에 따라 호텔의 얼굴도 유연하게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대목입니다.

 

취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AI 서빙 로봇은 여전히 분주했습니다. 호텔은 잠만 자는 숙소가 아닙니다. 무심코 누르는 버튼과 비누 하나 뒤에는 정보기술(IT), 화학, 식품 등 수많은 산업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린 치밀한 경제 셈법이 숨어 있어요.

 

다음에 가족과 함께 호텔을 찾는다면 화려한 로비 뒤에서 묵묵히 작동하는 이 거대한 '경제 시계태엽'을 한번 상상해보는 건 어떨까요?

방예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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