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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4월 16일 목요일

러우전쟁 길어지자 비상식량 챙기는 북유럽

김나영 서울 양정중학교 교사·경제전문작가

입력 2026-03-02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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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sk 생성

(출처:Whisk 생성)

 

Q. 최근 북유럽 국가들에서 사람들에게 비상식량과 현금을 챙겨두라고 한다는 얘길 들었어요.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현금 없는 사회가 된 지 오래라고 알고 있는데, 다시 현금을 챙겨두라고 하는 이유가 뭐고, 비상식량은 또 뭘까요?

 

과거의 공포가 만든 '식량의 산'

 

여러분, 혹시 '버터 산(Butter Mountain)'이나 '우유 호수(Milk Lake)'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나요?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닙니다. 1980년대까지 실제 유럽에 존재했던 풍경입니다. 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끔찍한 기근을 겪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유럽은 '다시는 국민을 굶기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있었어요. 유럽 국가들은 농민들에게 농산물의 높은 가격을 보장하며 남는 농산물을 다 사줬습니다. 농민들은 신나게 농사를 지었고, 창고에는 팔리지 않은 버터가 산처럼 쌓이고 우유가 호수를 이룰 정도로 넘쳐났습니다. 1980년대에는 유럽 국가들 예산의 70%가 이 식량을 사고 보관하는 데 쓰일 정도였죠.

 

필요한 만큼만 제때 배달하자

 

세상이 평화로워지자 산더미 같은 재고는 곧 낭비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전쟁이 날 위험에 대비해 창고에 버터, 밀가루, 우유를 가득 쌓아두면 보관 비용이 엄청나니까요. 집에도 안 입는 옷, 안 쓰는 물건을 버리지 않고 쌓아두면 그만큼 자리를 차지하면서 자리가 좁아지는 것처럼요. 게다가 음식은 소비기한이 지나면 버려야 합니다.

 

이런 낭비를 줄이기 위해 1990년대부터 유럽은 방식을 완전히 바꿉니다. 창고에 쌓아두는 대신 빅데이터와 정보기술(IT)을 활용해 '필요한 만큼만 제때 생산해서 배달하는 방식(JIT·Just-in-Time)'을 도입했습니다. 버터산이라 불린 식량 창고가 사라졌고, 트럭들은 쉴 새 없이 움직이며 물건을 날랐습니다.

 

그 덕분에 보관 비용이 줄어들며 물건값도 싸졌고, 유럽 국민은 더 신선한 음식을 먹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세상이 평화롭고, 물건의 이동이 자유롭다는 전제 조건이 있어야만 작동합니다. 프랑스에서 생산된 밀이 언제든 필요한 만큼 독일로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최근 러시아의 위협과 해킹 등으로 공급망에 금이 가기 시작했어요. '재고가 없는 시스템'은 순식간에 '아무것도 없는 시스템'으로 변할 위험에 처하기 시작했습니다. 경제학에는 '상충 관계(Trade-off)'라는 개념이 있어요.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죠. 유럽은 그동안 '비용 절감'을 얻기 위해 '안전'을 잠시 뒤로 미뤄둔 거였죠. 하지만 전쟁의 위협이 커지자 이제는 돈이 좀 더 들더라도(비효율), 굶지 않는 것(안전)을 선택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식량을 비축하는 유럽

 

러시아의 위협과 사이버 공격으로 전기가 끊기거나 물류망이 마비될 가능성이 커지자 노르웨이는 3개월치 곡물 비축을 시작했고, 핀란드는 8개월치 이상을 확보했습니다. 스웨덴은 국민들에게 '일주일은 스스로 버틸 수 있게 준비하라'는 매뉴얼을 나눠줬습니다. 국가 전체의 물류가 멈췄을 때 국민들이 혼란에 빠지지 않고 버틸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겁니다.

 

이제 식량은 시장에서 파는 '상품'이 아니라 나라를 지키는 '무기'가 된 셈입니다. 식량뿐 아니라 현금도 비축하고 있는데요, 이유는 음식을 비축하는 것과 같습니다. 스웨덴은 노인들까지 모바일 결제 앱인 '스위시(Swish)'를 쓸 정도로 디지털화된 나라입니다. 하지만 해킹으로 시스템이 멈추면, 스마트폰은 먹통이 되고 시장경제는 마비됩니다. 그래서 정부가 비상용 현금을 준비하라고 권고하기 시작한 거예요.

 

필요한 만큼만 제때 생산해서 배달하는 시스템은 비용이 적게 들어 효율적이지만, 물류망 마비 등의 위기가 발생했을 때 대응력이 떨어져서 덜 안전하죠. 하지만 안전을 위해 식량과 현금을 쌓아두는 건 효율적이진 않습니다.

 

창고에 물류를 쌓아두면 보관 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이 지나면 소비기한이 지나 버려야 할 수도 있으니까요. 북유럽 국가들은 이제 비용이 들더라도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쪽으로 다시 무게추를 옮기고 있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편리한 시스템이 당연한 게 아니란 걸 북유럽의 '식량 산'이 다시 쌓이는 모습을 보면 느낄 수 있지 않나요?

서울양정중학교교사 경제전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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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충 관계(Trade-off)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뜻.

전쟁의 위협이 커지자 유럽은 돈이 좀 더 들더라도(비효율), 굶지 않는 것(안전)을 선택하기 시작.

 

필요한 만큼만 제때 생산해서 배달하는 방식(JIT·Just-in-Time)

일본 도요타자동차 공장에서 시작된 방식인데, 지금은 우리가 쓰는 새벽배송이나 편의점 물류의 핵심 원리가 되었음

재고 비용을 줄이는 데 최고지만, 공급망이 끊기면 대안이 없다는 단점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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