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일 강원대학교 교수
입력 2026-01-05 09:07teen.mk.co.kr
2026년 04월 16일 목요일
(출처: Whisk)
연말이 되면 예전에는 거리와 상점 어디에서나 캐럴을 쉽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처럼 캐럴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고, 사람들의 기분을 밝게 해 주며 추운 겨울에 따뜻한 위로가 되어 주었습니다.
특별히 누가 시키지 않아도 캐럴은 연말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과거의 캐럴은 누구나 자유롭게 부르고 들을 수 있는 노래였으며, 거리나 시장 등 여러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공유되는 문화였습니다.
돈을 내지 않아도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었다는 점에서 캐럴은 사람들을 이어 주는 음악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거리는 조용해졌고, 예전 같은 연말 분위기를 느끼기 어려워졌습니다. 도대체 그 많던 캐럴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이 사라진 멜로디 속에는 우리 사회의 경제적 변화와 제도의 딜레마가 숨어 있습니다.
이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긍정적 외부효과라는 개념을 살펴봐야 합니다. 예전 상점들이 틀어 놓은 캐럴을 생각해 봅시다. 가게 주인은 자신의 가게를 방문할 손님을 위해 음악을 틀었지만 그 음악은 열린 문을 통해 거리로 흘러나와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에게도 크리스마스의 설렘을 선물했습니다.
경제학에서는 이렇게 어떤 경제 주체의 활동이 의도치 않게 제3자에게 혜택을 주면서도 그 대가를 받지 못하는 현상을 긍정적 외부효과라고 합니다. 상점 주인은 비용을 들여 스피커를 켰지만 정작 그 즐거움을 누리는 거리의 행인들은 돈을 내지 않고 음악을 즐겼던 셈입니다.
하지만 2018년 8월 제도의 변화가 찾아오며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저작권법이 개정되면서 백화점 같은 대형 매장뿐만 아니라 15평 정도 되는 일반 카페나 헬스장, 호프집에서도 음악을 틀려면 저작권료를 내야 하게 된 것입니다. 이를 전문 용어로 공연권이라고 합니다.
쉽게 비유하자면 스마트폰 음악 이용권은 나 혼자 듣는 티켓일 뿐 그 티켓으로 가게에 온 손님 수십 명을 동시에 즐기게 해 줄 권한은 없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상점에서 음악을 틀 때는 해당 음악의 작곡가와 가수에게 여러 사람이 듣는 것에 대한 대가인 공연권료를 따로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 법의 논리입니다.
이러한 제도의 강화는 분명한 장점을 가집니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자료에 따르면 한 해 징수되는 음악 저작권료가 4000억원을 돌파했고, 10년 전과 비교해 두 배 이상 성장했습니다. 한국은행 통계에서도 우리나라의 지식재산권 무역수지는 10년 넘게 흑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작자의 권리가 보호되고 정당한 수익이 보장되면서, K팝과 같은 거대한 문화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튼튼한 토대가 마련된 것입니다. 이는 경제학적으로 창작에 대한 강력한 인센티브가 되어 더 좋은 콘텐츠가 생산되는 선순환을 만듭니다.
하지만 규제가 강화되면서 거래비용이 증가하고 소비가 위축되었습니다. 경제학에서 거래비용이란 단순히 물건 값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정보를 탐색하고, 협상하고, 계약을 이행하는 데 드는 모든 유무형의 노력을 뜻합니다.
바뀐 저작권법은 상점 주인들에게 큰 숙제를 안겨 주었습니다. 내 가게 면적이 과금 대상인지 확인하고, 어떤 음악 서비스를 써야 합법적인지 알아보고, 매달 별도의 요금을 납부하는 과정은 바쁜 자영업자들에게 매우 번거로운 일, 즉 높은 거래비용으로 다가왔습니다. 규제가 촘촘해지면 경제 주체들은 움츠러들기 마련입니다. 상점 주인들은 "혹시라도 규정을 잘못 이해해서 단속에 걸리면 어쩌지?"라는 규제 위험을 피하고 싶어합니다.
굳이 복잡한 비용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캐럴을 틀어야 할 만큼 매출 증대효과가 크지 않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결국 상점 주인들은 가장 안전하고 비용이 들지 않는 선택, 바로 '음악 끄기'를 결정했습니다. 강력한 규제가 의도치 않게 시장의 활기를 떨어뜨리고, 거리에서 음악을 소비하는 문화 자체를 위축시키게 된 것입니다.
결국 요즘 거리에서 캐럴이 들리지 않는 건 단순히 유행이 변해서가 아닙니다. 공짜로 즐기던 시대가 끝나고, 강력해진 제도와 늘어난 거래비용 앞에서 경제 주체들이 합리적인 계산 끝에 내린 선택의 결과입니다. 창작자의 권리를 지키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거리의 낭만이라는 소중한 공공재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규제와 문화의 공존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게 되는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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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비용
(Transaction Cost)
경제 활동에서 거래를 성사시키는 데 드는 제반 비용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물건의 가격뿐만 아니라 정보를 수집하고, 조건을 협상하며, 계약을 이행하는 데 투입되는 시간과 노력을 모두 포함합니다.
예를 들어 중고 물품을 구매할 때, 원하는 물건을 검색하고 판매자와 연락하여 약속 장소까지 이동하는 데 드는 수고와 비용이 모두 거래비용에 해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