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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1월 13일 화요일

똑같은 '물'인데 가격 20배 차이나는 까닭은

최병일 강원대학교 교수

입력 2025-11-17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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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sk로 생성한 그림)

 

 

"대형마트에서는 생수가 0.25달러, 슈퍼마켓에서는 0.50달러, 카페에서는 2달러, 고급 레스토랑이나 호텔에서는 3달러, 그리고 공항에서는 5달러에 팔린다." 이 문장은 최근 전 세계의 SNS 피드를 가득 채운 '바이럴 문구'입니다. 특별한 출처나 유명 인사의 이름도 없지만, 수백만 명이 공감하며 '좋아요'를 눌렀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우리는 같은 물건이라도 장소나 상황이 달라지면 전혀 다른 가격으로 팔리는 경험을 한 번쯤 해봤기 때문입니다. 마트에서는 생수 한 병이 500원 남짓이지만, 카페에서는 3000, 공항에서는 6000원을 넘습니다. 물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 물을 둘러싼 '상황''맥락'이 바뀌면 가치가 달라집니다.

 

많은 사람이 이 문장에 공감한 이유는 단순히 가격의 차이 때문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가치가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깨달았습니다. 같은 생수라도 어디에 놓이느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듯, 나 역시 어떤 환경에 있느냐에 따라 평가받는 가치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사람의 가치는 고정돼 있지 않습니다. 자신이 놓인 맥락과 주변의 수준,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따라 평가가 달라집니다. 이처럼 맥락이나 상황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현상은 개인의 성장 측면에서 보면 긍정적인 자극이 될 수 있습니다. 더 나은 환경으로 나아가려는 동기, 자신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건강한 자기계발의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경제학적으로 보면 "상황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는 말은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리처드 세일러 시카고대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심리적 회계'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사람들은 머릿속에 여러 개의 '가상 계좌'를 만들어두고, 같은 돈이라도 용도나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끼고 다르게 지출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같은 1만원을 쓰더라도 여행 중에는 '즐거움을 위한 소비'로 쉽게 지출하지만, 평소에는 '낭비'로 느낍니다. 돈의 객관적 가치는 같지만 맥락과 감정의 프레임이 달라지면 판단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Whisk로 생성한 그림)

 

그리고 이러한 심리적 회계는 일상 속에서도 쉽게 드러납니다. 성과급, 세금 환급, 복권 당첨금처럼 예상치 못한 돈이 생기면 사람들의 소비가 눈에 띄게 달라집니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하우스 머니 효과(house-money effect)'라고 부릅니다. 카지노에서 딴 돈처럼 '원래 내 돈이 아닌 것 같은' 심리가 생기면 사람들은 평소보다 훨씬 더 쉽게 돈을 쓰고, 더 큰 위험을 감수합니다.

 

세일러 교수와 에릭 존슨 교수는 이 현상을 실험을 통해 입증했습니다. 참가자들에게 일정 금액의 이익이나 손실을 경험하게 한 뒤 의사결정을 관찰한 결과 이익을 얻은 사람은 위험을 더 선호했고, 마치 잃어버려도 상관없는 돈처럼 공격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특히 실제 돈(real money)을 사용한 실험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은 뜻밖에 생긴 돈을 자신의 돈으로 인식하지 않고, 마음속에서 '보너스 계좌'로 분리해 더 쉽게 소비하거나 무리한 투자를 감행한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감정적 판단이 반복될 때입니다. 초기 이익을 얻은 투자자가 "이건 잃어도 되는 돈이야"라고 생각하며 더 큰 위험을 감수하는 사례는 흔합니다. 실제로 여러 연구에서 횡재를 경험한 투자자들이 주식, 파생상품, 가상화폐 같은 고위험 자산에 더 적극적으로 투자한다는 결과가 확인되었습니다. 하우스 머니 효과가 누적되면 소비 통제는 느슨해지고, 저축률은 낮아지며, 재정의 안정성은 흔들립니다.

 

그렇다면 이런 심리적 함정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핵심은 '돈의 감정'을 바꾸는 것입니다. 보너스나 환급금은 흥청망청 써버리기 쉬운 '기분 좋은 돈'이지만, 마음속에서 그 돈의 이름표를 바꾸면 소비 습관이 달라집니다.

 

먼저, 돈의 자동 흐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보너스나 환급금이 들어오면 자동이체를 설정해 일정 금액이 저축이나 부채 상환 계좌로 옮겨지도록 하세요. 예를 들어 '입금 후 다음 날 50%는 적금으로, 30%는 카드값으로 이체' 같은 규칙을 걸어두면, 돈이 생기자마자 '소비할 돈'이 아닌 '관리된 돈'으로 인식됩니다. 또 결정의 속도를 늦추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효과적입니다. 충동은 시간이 지나면 약해집니다. 새로 생긴 돈으로 무언가 사고 싶을 때는 바로 결제하지 말고 하루나 일주일 뒤로 미루는 것이 좋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돈이 생긴 뒤의 행동이 아니라, 돈이 들어오기 전의 태도입니다. 앞서 소개한 계획된 자동이체와 지출 유예와 같은 작은 장치들만 실천해도 하우스 머니 효과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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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회계(Mental accounting)

 

말 그대로 '마음속에서 이뤄지는 회계 처리'를 의미하는 개념입니다.

일반적인 회계(accounting)가 기업이나 개인의 재무 상태를 수치로 기록하고 관리하는 행위를 뜻한다면, 심리적 회계는 개인이 머릿속에서 돈의 흐름을 인지적으로 구분하고 평가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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